오스트리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젋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글을 옮겨 적는다.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결합을 행복이라 부르고 자신들의 미래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다른 사람까지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구역질과 실망, 빈곤 뿐입니다.]
I google about Rilke, and finally find the whole text of Letters To A Young Poet posted online. I copy and paste some sentences.
[It is also good to love: because love is difficult. For one human being to love another human being: that is perhaps the most difficult task that has been entrusted to us, the ultimate task, the final test and proof, the work for which all other work is merely preparation. That is why young people, who are beginners in everything, are not yet capable of love: it is something they must learn. With their whole being, with all their forces, gathered around their solitary, anxious, upward-beating heart, they must learn to love. But learning-time is always a long, secluded time, and therefore loving, for a long time ahead and far on into life, is: solitude, a heightened and deepened kind of aloneness for the person who loves.
Loving does not at first mean merging, surrendering, and uniting with another person (for what would a union be of two people who are unclarified, unfinished, and still incoherent?), it is a high inducement for the individual to ripen, to become something in himself, to become world, to become world in himself for the sake of another person; it is a great, demanding claim on him, something that chooses him and calls him to vast distances.]
Here is the whole text of the letter from R.M. R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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