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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15, 2010

2010년을 뒤돌아 보며

백호의 해라며 시끌벅적하게 시작한 올해도 어느덧 두달 남짓 남았다. 호랑이 띠라 그런지 올해는 시작부터 괜시리 많은 기대와 포부를 담게 되었던 해였다. 이런 한 해를 조금은 일찍 마감하면서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2010 학년도 학회지에 내 이야기를 싣고 싶다하여 부끄럽지만 글을 써서 보냈다. 이곳에도 그 글을 옮겨 담아둔다.



교수님, 교직원 선생님, 그리고 선배님과 후배님께

안녕하세요,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2005학번 노지훈( @JihoonRoh )입니다.

올해는 본의 아니게 학과 전체 메일 및 교내회보를 통해 종종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렇게 학회지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김성환 후배님 감사합니다.

기고 요청을 받고 어떤 멋진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제 근황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합니다. 2010년은 개인적으로 많은 도전과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해였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지난 7월부로 전역을 하여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사회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오히려 특혜라고도 할 수 있는 용산 카투사로 22개월 군복무를 했습니다.

2008 9 8 입대 후 9 15일 리만부라더스의 파산 소식을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접하며 반토막이 났을 펀드 수익금이 아른거렸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5주간의 시간. 훈련소 담장 너머의 소식에 갈증을 느꼈습니다. 이런 날들이 하루 하루 지나며, 어느새 정보에 대한 갈증도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용산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후에도 자신과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었지만 근접할 수 있는 조언들을 책에서 발견했습니다. 분야가 정해지지 않은 종횡무진 독서는 동서양의 인물, 역사, 소설, 그리고 철학 등으로 갈팡질팡했습니다. 어느새 부대 한편에 진열된 독서대의 책을 거의 다 읽게 되었을 때 군대에서 맞는 두번째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2009 12. 신촌에 있는 어느 공간대여 세미나실에서 열린 다개국어 스터디에 참여했습니다. 한번에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본어로 물어보는 서양인, 중국어로 대답하는 한국인,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는 인도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다양한 언어로 함께 떠들고 웃는 모습은 신선한 자극이었고 새로운 동기유발이었습니다.

2010 1.다개국어 스터디를 주최하는 G9Languages 에 들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캠코더 하나를 빌려 광장시장에서 파전을 먹는 일본인 관광객 인터뷰를 처음으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유튜브로 공유했습니다. 하루는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하는 산사에 들려 그들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며 그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했습니다. 많은 걸 느끼고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010 3. 국립중앙도서관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도서관 선진화 논문 공모를 준비하며 내부에서 바라보는 도서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말시간을 활용해 도서관에서 사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매시간 반복되는 도서정리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의 분야가 무엇이고 어떤 정보에 대한 갈증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2010 4. 8회 경기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도전했습니다. 포항에서 수업 전 새벽수영으로 다져온 체력과 매일 구보로 단련된 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4시간 54분이라는 기록보다 5시간 남짓 달리며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100회 완주를 목표하는 60대 할아버지, 35km 지점에서 지쳐있는 저를 앞질러 달린 팔 한쪽이 없던 장애인, 그리고 결승점에서 저를 기달려주신 부모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한번 변화게 되었습니다.

2010 6. 국립중앙도서관 주최 대학()생 도선관 선진화 논문 공모에서 1등으로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다른 수상자 중에는 문헌정보학 및 행정학 전공자들은 있었지만 공학 전공자는 유일했습니다. 자료 조사 및 논문 검증 단계에 머물지 않고 직접 도서관 사회봉사 활동과 다양한 사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논문이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합니다. 이를 통해 도서관장이란 꿈에 한 발 짝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2010 7. 전역을 20일 앞둔 금요일 저녁. 처음으로 Prezi 오픈세미나를 신촌 다개국어 스터디가 열렸던 그 공간에서 개최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Prezi 를 주제로 다양한 곳에서 강연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국내 최대 규모의 Prezi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부다페스트의 본사와 함께 Prezi 한글 테마 개발을 기획하여 한글날에 맞춰 발표하게 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2010 10. 매일경제에서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을 통해 전 세계의 지성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즈, 노벨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그리고 화재의 인물 쑹훙빙, 니얼 퍼거슨 등 이 밖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가, 학자, 경제인, 정치인들이 함께한 자리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함께 참여한 동료들과 자금을 마련해 2 3일간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려 동거동락하며 3일간 세계지식포럼의 현장감을 실시간으로 보도했습니다.
매일경제에서 주관하는 세계지식포럼은 많은 스탭을 대학생으로 선발하여 이와 같은 국제적인 포럼에서 봉사를 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매우 다양한 학교와 전공의 학생들이 있었지만 포항공과대학교 학생은 제가 유일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2010 11. 쏜 화살 같이 달려온 2010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Prezi를 처음 접한 뒤로 국내에서도 TED컨퍼런스와 같은 지식나눔과 지적유희를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11 5일 강남의 카페 한곳을 빌려 그 동안 인연을 맺어온 50 여명의 연사들을 모시고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는 Prezi 파티를 기획했습니다. 조그만 변화로 우리사회가 일보 진전했음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글을 쓴다는 건 말을 한다는 것보다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기록으로 남아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두고 걸어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글이 후배님들에게 좋은 이정표 중 하나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Friday, October 15, 2010

제8회 Hi! Seoul 마라톤 풀코스 완주

   미등록 참가자로 6시간 30분이 넘게 걸려 겨우 완주했던 베를린마라톤에 이어 2010 경기마라톤, 그리고 제8회 하이서울마라톤에 이르기까지 인생에 있어 세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도전했다.


   지난 4월 경기마라톤을 4시간 54분대로 완주하면서 앞으로 몇 년간은 마라톤은 말도 안꺼낼꺼라 했지만, 이번 대회의 코스를 보고는 덜컥 신청하게 되었다. 청계천을 따라 중랑천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코스가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체 등록해서 함께 뛰는 사람들이 부러워 이번 경기에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나섰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 뛰는 마라톤임에도 덜컥 풀코스를 함께 뛰겠다고 해서 당황했다.

















   함께뛰는 멤버중에 유일한 여자였던 대학 동기 지선(@saindang)이만 하프로 변경하고 다른 두 형들과는 함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기로 했다. 

   7월에 전역한 이후로는 이런 저런 핑계로 운동을 착실하게 하지못했던 결과가 여실히 들어나는 하루였다. 처음에는 젊은 패기로 시작선 맨 앞에서 출발소리와 함께 힘차게 달려나갔다.


   운이 좋게 출발선에서 달리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하지만 단 10분도 유지하지 못한체 선두그룹에서 하나씩 하나씩 뒤로 계속 밀리면서 달리게 되었다. 광화문과 시청 주변의 청계천은 자주가 보았지만 그 끝까지는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 경기를 통해 이곳 저곳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어느새 10Km 참가자, 하프 참가자와 코스가 갈라지면서 주변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하나씩 줄어 들기 시작했다.

   중랑천을 빠져나와 한강으로 진입하면서 동호/한남/반포/동작/한강/원효/마포/서강대교를 지나 반환점을 찍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때는 몰랐는데, 다리와 다리사이가 이렇게 멀었다는 사실 또한 이번에 깨달은 큰 교훈이었었다. 반환점을 돌아 왔던길을 따라 달리면서 함께 참가하게 된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기쁜마음으로 서로에게 달려가 큰 소리와 화이팅을 외치며 다시금 각자 자신과의 싸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별다른 준비 과정없이 출전한 마라톤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정하던 발목에서 가벼운 통증이 시작되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친형이 어느새 옆에서 함께 뛰고 있었다.

   함께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달리던 중 이순간을 추억하고 싶어 한강에서 사진을 찍고 계신 시민 한분께 트윗양말을 건네드리며 부탁을 드렸다.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신 그분은 이처럼 사진을 보내주셨다. 성함도 건네 받지 못했던 그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만난 안전요원으로부터 파스를 진하게 뿌린 탓에 발목의 통증도 사라졌다. 어느새 교통 통제 제한 시간인 5시간을 넘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2km 지점을 남기고 형은 달릴수 있으면 먼저 달리라며 자기는 천천히 가겠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둘 사이의 걸이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강 도로변을 빠져 나와 서울숲으로 돌아들어가는 시점에 완주 메달을 목에 건 지선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선이는 처음 출전한 하프 코스를 2시간 30분대로 가르며 언제오나 기달려 주었다. 마지막 200m 정도를 함께 달려주며 끝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뒤이어 형이 들어왔다. 하지만 함께 마라톤을 신청한 형 친구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어느새 교통 통재는 끝이나고 거리는 달리는 차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로부터 아직 한 사람이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고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이 형 친구이기를 기대하며 다 같이 끝까지 기다렸다. 평소에도 운동을 많이하지 않던 형 친구분이기에 엠브란스가 한대씩 지나갈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하지만 결국에 7시간이 넘게 걸려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이미 공식 기록장치는 철수된 상태였다. 따로 챙겨둔 완주 메달을 목에 걸어주었다.


   다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완주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즐거웠다. 끊임없이 달리는 동안 머리속으로 정리하던 많은 생각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응원해준 참가자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인연들을 통해 다시금 도전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12일 세계지식포럼 강연장에서 만난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강연의 마지막에 올해로 60살 생일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마라톤에 참가했던 이야기를 했다. 가족을 살피고 건강을 챙기라는 리처드 브랜슨 회장의 조언을 세기며 나도 내가 60살이 되는 2045년에 가족과 함께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삶을 다짐했다.

Prezi로 발표하는 한국인의 모임


차세대 PT 도구 ‘프레지’ 한글 스타일 만든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노지훈
     
         
Prezi(프레지)는 2009년 4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두 청년이 만든 새로운 형식의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제품 출시 때부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포함해 다양한 곳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Prezi는 출시 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TED컨퍼런스에서 연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입증되었다. 기존의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널리 사용되는 MS사의 PowerPoint와 달리 Prezi는 스토리텔링에 최적화된 도구로 극찬을 받았다.
     
Prezi 는 한 장의 큰 캔버스에 다양한 크기의 텍스트․이미지․동영상을 배치시켜 자유자재로 화면을 옮기며 이야기 전달을 돕는다. 특히 큰 청사진에서 세밀한 부분으로 줌 인을 하며 좁혀갔다가 다시 줌 아웃으로 빠져나오는 Prezi의 기능은 단연 압권이다.
     

근거리 무선통신 반도체 기업인 레이디오펄스(주)에서 인턴을 수행하고 있는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4학년 노지훈 군은 2009년 8월 처음으로 Prezi를 접한 후 그 매력에 빠져 Prezi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영어․일어․중국어만을 지원하는 Prezi에 아쉬움을 느끼고 Prezi 한글 스타일 개발을 위해 Prezi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Prezi 본사로부터 확답을 구하지 못하자 세계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에 'Prezi로 발표하는 한국인의 모임(http://facebook.com/pezKor)‘을 개설하여 Prezi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무료 오프라인 세미나를 진행하며 Prezi 한국인 사용자들의 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임 개설 후 두 달 만에 가입자 수 300명을 넘기며 Prezi 본사로부터 감사의 뜻을 전하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제3회 오픈세미나에서는 Prezi 창업자 중 한 명인 애덤이 환영 인사말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주는 등 이를 계기로 Prezi 본사와 Prezi 한글 스타일 개발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Prezi 한글 스타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최형환 디자이너와 노영권 책임연구원이 한글 폰트 개발의 기술적인 부분을 맡아주었다. 마침내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맡아 Prezi 한글 스타일을 공식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발표식은 노지훈 군이 진행하는 오픈세미나 시간에 맞춰 부다페스트 Prezi 본사와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이용해 Peter Arvai, Prezi CEO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번 Prezi 한글 스타일 개발은 한글날을 기념하여 세계적인 웹 서비스 회사에서 함께 축하한 것과 더불어 그 과정 또한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집단지성의 힘을 잘 활용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아래는 Prezi 한글 스타일 개발과 관련한 기사와 자료입니다.
     
- 전자신문(10월 15일자) 기사
     
- SBS 뉴스
     
- 매일경제(10월 9일자, 2면) 기사
     
- Prezi Inc.의 기업 블로그 인터뷰 기사
     
- Prezi로 만든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IME) 소개 자료

Friday, May 07, 2010

대중 연설가가 되기 위한 길

4년전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수강하면서 독일어를 못해서 애를 먹는 동안 그나마 조금은 알아 들을 수 있는 영어가 나오는 CNN은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매일 같이 CNN을 보면서 뉴스 말고도 유명인 인터뷰와 비지니스 여행 등을 다루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CNN에서 취재나온 기자와 영어로 인터뷰를 하게될 날을 꿈꾸게 되었다. 미래에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 상상이 영어 공부를 하게 만든 큰 동기가 되었다.

이와 마찮가지로 최근에는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한 오바마 미 대통령의 연설과 Podcast로 TED를 구독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연 및 연설을 하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이는 단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넘어서 청중의 가슴에 열정과 꿈을 심어줄 수 있는 힘있는 대화법을 배워야 가능하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는 그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공동 서재에서 표현법에 관련된 책을 모두 빌렸다.


일상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대화법,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협상력,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연설 및 강연,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글쓰기 등 우리를 표현하는 다양한 것들 중 말과 글에 2주간 집중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말과 글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읽은 책들이 한결같이 듣기와 읽기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가면서 배운 것들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및 TED 연사들의 동영상 속에서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손짓과 눈맞춤을 이용한 몸 동작,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 가벼운 예시를  통한 부드러운 도입부,  중간에 적절한 침묵과 반복을 통한 강조, 그리고 주제를 명확히 하며 최신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마무리 등 책에서 설명된 기술적인 부분들이 연사들의 몸에 배어있었다.

태어날 때 부터 뛰는 사람이 없듯이 유명한 대중 연설가들도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의 결실이다.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겁없는 글쓰기와 말하기로 연습해야 한다. 가슴뛰는 아이디어를 그 때 그 때 적어두고 건설적으로 발전시켜 글, PowerPoint, 동영상, Prezi 등의 도구로 정리해 궁극적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뜻(志)을  전달할 준비를 한다. 이것이 대중 연설가가 되기 위한 초석이다.

Monday, April 26, 2010

제 8회 경기마라톤 후기

지난 18일 제 8회 경기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4시간 54분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사실에 정말 많은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그 뒤로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본다는 것이 벌써 1주일이 지나서야 올리게 되었다.



어떨결에 완주하게 된 베를린마라톤을 제외하면 이번 대회가 첫 공식적인 풀코스 도전이다. 8시 30분 출발 총성이 울릴때 까지 5km, 10km, 하프코스, 그리고 풀코스 모두 대형을 맞추어 몸풀기 운동을 했다. 몸을 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풀코스에서 함께 뛰게 될 사람들 대부분은 다리에는 근육을 따라 테이프를 붙이고 옷에는 '000마라톤동호회' 등과 본인의 이름이 적힌 마라톤 매니아들이었다. 과연 첫 번째 마라톤 기록 도전에 풀코스부터 뛰어도 되려나하는 의구심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몸 풀기 운동이 끝나고 제일 먼저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선에 올랐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카운트다운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가능한 앞 줄에서 선두그룹에 속해 달렸다. 경기장을 벗어나 한참을 달렸을까,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씩 앞으로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뛰기 전부터 마음 속으로 5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기에 한참 뒤 처진줄 알았는데 옆에서 '3:20'이 적힌 풍선을 허리춤에 맨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갔다. 10km까지는 이처럼 꽤 빠른 속도로 달렸다.
20km를 지나면서 근육에 힘이 빠지는걸 느꼈다. 옆으로 '4:00'을 알리는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갔다. 장안문을 돌아 화성시를 거쳐 병점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성균관대역까지 올라왔다. 더 이상 근육에 힘이 안들어가 뛰기를 포기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익숙한 옷차림이 눈에 뛰었다. 도로에는 가족들이 나와있었다. 박수를 치며 초콜렛을 건내주시는 어머니와 100m 가량을 응원과 함께 뛰어주신 아버지. 여기서부터 다시 힘을 내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35km가 지나면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에서 다리가 풀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4:30'을 알리는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갔다. 한참을 걷는 속도로 뛰었다.

그러던 중 한쪽 팔이 없는 마라톤 도전자가 옆을 지나서 계속 뛰어나갔다. 그 순간의 찰라에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내 도전이 얼마나 미진했고 값비싸게 포장되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달리는 정신이란 바로 이것이라 느꼈다.

40km를 지나자 출발지였던 수원종합체육관을 가리키는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초시계는 4시간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5시간 안에 들어오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위해서는 이제부터 절대 걸으면 안되었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한발 한발 뻗어나갔다.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자 이미 완주를 마친 사람들과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지막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 주자들이 경기장 트렉을 돌면서 골인점까지 달릴때 기분이 어떨지 많은 상상을 했었다. 직접 체험해 보니 한마디로 '해냈다!'라는 짜릿한 느낌과 무거웠던 몸은 어느새 솜털처럼 가벼워지면서 마지막을 향해 달리게 된다.
공식기록 4시간 54분 37.37초로 결승선을 지나 풀코스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응원을 해준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도전승리를 자축했다.

젊음을 시험해 보고싶은 마음에 출전한 마라톤 풀코스는 젊음이 결코 나이가 어린 것이 아니라 뜨거운 도전정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끊까지 쉬지않고 달린 아주머니와 한 팔이 없던 아저씨. 그리고 200회 풀코스 완주를 기념하는 할아버지. 이 분들의 뜨거운 열정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관련글]
42.195

Friday, April 16, 2010

42.195

각각의 숫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예로  1은 제일주의, 3은 균형, 그리고 7은 행운을 말한다. 가끔은 나라별로 그 숫자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른 경우도 있지만, 42.195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삶과 도전을 뜻한다.

42.195와의 첫 인연은 순전히 우연과 무모함이었다. 2006년도에 베를린공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겨울학기를 이수하기위해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 근처에 살고 있었다. 10월 중순부터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한 달 먼저 도착해서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주변 구경으로 시간을 보냈다.
평소처럼 주말 아침에 조깅을 하러 집 근처 공원에 왔다. 높이 떠있는 색색의 풍선들과 거리의 나무 마다 걸여있는 대형 현수막들이 큰 축제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주변을 구경하던 사이 어느새인가 큰 무리의 인파에 섞여 달리고 있었다.



거리마다 집 밖에서 박수를 치며 물을 건네는 주민들과 밴드 공연을 구경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계속 뛰었다. 아침식사 전에 잠깐 조깅하러 나온 차림으로 한 20 km 정도를 달렸을까, 이제는 배도 고프고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 와본 동네고 뒤쳐진 몇몇 사람들 뿐이었다. 주머니에 돈 한푼 들어있지 않았다. 거기다 공식적으로 마라톤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쳐진 사람들을 태워주는 차에 탈 수도 없었고, 짧은 독일어로 자초지정을 설명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결승지점이 브란덴부르크 문이었기 때문에 코스를 따라 계속 달리다보면 집 근처로 가는 방향이었다. 한참을 달렸을까 어느덧 눈에 익숙한 건물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완주 메달을 목에건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6시 30분이라는 비공식 기록으로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으며 얘기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돈 없고 길 모르고 말 안 통하고 힘도 빠진 상태에서 절망감에 앞만 보면서 뛰었다.

그 로 계단을 오를때마다 고생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독일어 어학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베를린마라톤이 세계 4대 마라톤(뉴욕, 런던, 보스턴 암스테르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인 마라톤 대회라는 사실을 알고 괜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때 이후로 언젠가는 반드시 공식적인 풀 마라톤 완주 기록을 남겨보겠다는 꿈을 키웠고, 그래서 올해 4월 18일에 제 8회 경기마라톤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수원으로 이사한지 올해로 4년째가 되지만 아직도 수원 지리를 잘 몰랐는데, 이번 마라톤을 기회로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수원시내를 구경할 계획이다. 뛰는 중간 중간에 실시간으로 사진과 함께 트윗(@JihoonRoh)을 할 예정이다.


FYI
42.195의 유례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사뭇다르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당시 영국 왕실은 마라톤의 출발과 결승 광경을 편안히 볼 수 있도록 코스를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종래의 마라톤 거리 40.235km 보다 약 2km가 긴 마로톤 코스가 정해졌으며, 이 새로운 거리는 런던 올림픽 이래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의 마라톤 전쟁에서 유래한 이 경기에 얽힌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한 전 세계적인 마라톤 경기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에서는 금기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이란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다.(위키백과 참조)


[관련글]
120살까지의 인생설계

Tuesday, April 13, 2010

작은 성공, Wow Project

2007년 10월 15일 POSTECH POSCO 국제관 1층 세미나실에서 백성기 총장의 취임 후 첫 '총장과의 대화' 행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총학생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별도로 학생들이 총장님께 직접 제안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동안 POSWIC(Postech Swimming Club)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교내에 수영장이 없는 불편을 토로할 기회가 왔다. 교내 온라인 게시판 PosB 와 POVIS, 이메일 등을 이용해서 3일 동안 수영장 건립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학생들보다 교직원 및 연구원들의 수영장에 대한 강한 요구들을 수합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교내 수영장 건립이라는 꿈만 같았던 목표에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총장님 앞에서 5분의 발표 시간이 주어졌다. 밤새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다듬고 다듬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에는 세계적인 대학에 비교해서 열학한 체육시설을 강조하고 수영장을 통해 육체적 건강 뿐만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주는 다른 대학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리고 현재 수영장의 부재로 매번 포항 시내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강조하고 수영장 건립에 대한 청사진을 담았다. 프리젠테이션의 파일명을 Wow Project로 했다.


 

 
방에서 몇번의 리허설을 한 후 결전의 날이 왔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가니 커다란 세미나실의 규모와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학과주임교수님들의 위압감에 온몸이 떨렸다. 속으로 침착하자고 몇번을 되내며 큰 목소리로 인사와 함께 시작했다. 처음에는 목소리 톤이 떨리며 불안했지만 어느덧 차분해 지면서 나도 모르게 무대 위를 왔다 갔다하며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발표의 목표는 가능한 총장님을 포함한 대학 본부 보직자 및 학과주임교수님들께 교내 구성원들의 수영장 건립에 대한 바람을 오감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열정적인 발표에 좌중의 술렁임에도 혼신을 다한 발표가 마칠 때까지 총장님의 굳은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 뒤로 약 2년 6개월 정도가 흘렀다. 교내 유일한 수영동아리 POSWIC이 해체되고 수영장에 대해 잊어갈 무렵 우연히 교내 포털에 올라온 [실내수영장 이름 공모]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글의 내용은 현재까지 테니스 경기장으로 사용하던 체육관을 리모델링해서 내년 여름까지 POSTECH 실내 수영장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지어질 POSTECH 수영장의 이름을 공모한단다. 해체된 수영동아리 POSWIC의 혼을 다시 살리고자 POSWIC(Postech Swimming Complex)을 제출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지난 날의 작은 열정과 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POSTECH에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가능하다면 이 작은 변화의 모멘텀을 이어 POSTECH 실내수영장에서 심리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기도록 돕고 싶다. 화려한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내실있는 소프트웨어도 갖춘 POSTECH 실내수영장이 되길 기원한다. 끝으로 교내 주점 '통나무 집'에 이어 또 한번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신 총장님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 분들의 넓은 마음에 감사드린다.


[관련글]

Thursday, April 08, 2010

포항 마실나가다

1박 2일로 포항에 다녀왔다. 은사님이신 이재욱 교수님을 찾아 뵙고, 오랜 만에 산업경영공학과 동기들과 추억의 통나무 집에서 맥주 잔을 기울이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학부 시절 애증이 담긴 신문사도 방문했다.

아침 일찍 POSTECH 학술정보관 트위터 계정(@postechlibrary)을 관리하시는 권태훈 사서 선생님을 만났다. 트위터로 급 연락드린 인터뷰임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해주신 권태훈 사서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권태훈 사서님께서 말씀해주신 Information Commons 개념, 문헌정보학 및 도서관과 관련된 다양한 협회(도서관협회,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전국도서관대회, IFLA), 그리고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다른 사서분들에 대한 소개(@blackmt1 이용훈 사서님, @cliomedia 배승일 사서님) 가 도서관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논문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점심에는 신문사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국문 신문사 옆에 영문 신문사가 들어섰고 전보다 많이 증편된 후배 기자들과 새롭게 정비된 기자재에 놀랐다. 신문사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는 들었지만 과거의 신문사 모습과 비교하면 문자 그대로 혁신이다. Bilngua Campus 선포식과 더불어 POSTECH 영자 신문 출간은 신문사를 한국의 외딴 섬 포항을 벗어나 전세계적인 대학 매체의 하나로 발전하는데 좋은 발판이 될 것이다. 향상된 업무 프로세스와 다양한 분야의 기자 발굴로 신문사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소셜네트와크를 활용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세계속의 POSTECH 신문사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언제나 아낌없는 조언을 주시는 이재욱 교수님과의 저녁 식사는 현재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과 앞으로의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현 시대의 살아있는 경영학 구루인 미국의 톰 피터스,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독일의 헤르만 지몬을  롤 모델로 하는 나에게 이재욱 교수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살이되고 피가 되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소수의 절대 지존 구루 대신 소셜네트워크로 똘똘 뭉친 브레인 그룹인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에 의해 바뀌어 나갈 것이란 말씀을 해주셨다. 마침 지난 24일자 POSTECH 신문에 기고한 'Pareto, Long Tail, and 1000 True Fans'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이재욱 교수님과의 저녁식사는 불쾌한 안락감을 깨고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전신을 가담듬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관련글]
도서관에 책이 없다면
Be Guru? Be Guru!
Pareto, Long Tail, 1000 True Fans

Wednesday, December 30, 2009

2010년 첫번째 도전

목표: 2010년 2월 27일 진흥회 주최 한자 2급
전략: 예스이지 한자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방학 특강반을 활용한다. 주말반의 특성상 주중 시간을 활용하여 복습을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LB's blog를 통해 전 주에 배운 내용을 정리하여 올린다.

이유: 범국가적인 순수 한글화 사업을 통해 이제는 신문에서도 한자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글의 많은 단어들이 한자어를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를 사용함에 있어 단어의 정확한 사용을 위해 한자에 대한 이해는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자 문화를 기본으로 공유하는 한-중-일 3국의 협력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한자의 중요성 또한 커짐을 스스로 느끼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위해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