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주한미국대사관 자료정보센터(IRC)/공보과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있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세종로에 있지만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는 남영동에 위치한다. 전화로 알아본 결과 용산 미군 부대와 붙어 있어서 근무를 마친 후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번 연주회는 한 종군기자의 희생을 기리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하나라고 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Christopher Harding 미시간 음대 교수이다.
연주회 시작 전 다과회 때까지만 해도 무료한 하루 중에 좋은 음악을 듣고 집에 간다는 마음 가짐이었다. 하지만 소개를 받은 Harding 교수의 등장과 함께 나는 의자에 푹 눌러 앉은 내 자세를 고쳐야만 했다. Harding 교수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연주 속에 담긴 감정들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음악 강의는 중/고등 학교 때를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사실, 음악이란 취미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기 가장 좋은 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런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초청객들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모임 혹은 음대 학생들, 그리고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 손에 붙잡힌 아이들 이었다. Harding 교수는 피아노 연주를 한, 두 소절씩 하면서 이 음은 어떤 느낌을 들게 하는지, 무엇을 연상 시키는지 등을 묻고는 했다. 음악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완전 주눅들어 입을 꾹 닫고 있던 나도 교수의 설명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보니 어느새 그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의 음악 전반에는 우아함이 풍부한 반면, 미국의 folk music에는 fun 요소가 다분히 담겨 있다. 그리고 독일의 베토벤은 self-importance와 strength을 표현한다. 이 외에도 각국의 음악가들은 그들의 음악 속에 자국의 identity를 담고 있다. Harding 교수가 한국의 전통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면, 아리랑을 연주하고 '한(grudge)'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교수가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를 꺼내면서 현대 사회에서 우아함의 상실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우아함? 가끔 앙 드레 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Elegance 말이다.
한때 Elegance는 사치며 과시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이 자신 만의 style이 중시되며 Edge와 Sexy가 공중파를 타며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세상에서 Elegangce라니 조금은 역시대적 발상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Elegance는 부잣집 마님의 사치스러운 모피코트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에서 품위와 정중함 등에서 Elegance의 의미를 조명하고 싶다. 온라인 상에서 맺고 끊어지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Elegance를 구현하고 싶다.
Elegance를 사치의 하나로 바라보면 비용적 요소만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욕구 중 Elegance를 원하는 부분을 긁어주면 Elegance는 신 사업의 idea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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