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탈락에 아쉬워하면서 한편으로 경기를 응원하는 동안 사촌 동생들의 특별한 행동이 눈에 뛰었다. 경기 중 골이 터지거나 주심의 석연찮은 판단이 내려질 때마다 사촌 동생들의 환호와 탄성을 지르며 동시에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연신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열정적이였던지 마치 자신의 환희와 슬픔의 페로몬을 휴대폰을 이용해서 동료들과 교환하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과의 릴레이 문자는 경기 후에도 아쉬움을 달랠 수 없었던지 계속 이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본 고모는, "사내 아이들이 머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식사 중이거나 이동 중에도 저렇게 매일 문자를 보낸다." 라며 한 숨을 쉬셨다.
고모의 한 숨썩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돈 탭스콧의 <디지털 네이티브>가 떠올랐다. 베이비붐 세대의 막차에 올라탄 1960년대생 고모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1990년대생 사촌 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정보화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다른 성향을 보이는 두 세대의 간극을 연결하고 서로의 문화로부터 장점을 교류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읽으면서, 과연 나는 디지털 네이티브인지 반문했다.
1986년생으로 어릴 적부터 현대컴보이-세가새턴-PS1-PS2로 이어지던 비디오 게임기의 발전 역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1999년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개인 핸드폰을 장만했으며, 비록 집안 식구 중에 컴퓨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지만 어머니의 선견지명으로 내 방에는 386 컴퓨터가 있었다. 현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없다면 단기유학을 가서 만난 유럽친구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지 막막함이 앞서고 구글이 망해 G메일에 등록된 지인들의 연락처와 구글 캘린더에 있는 향후 계획표가 몽땅 날라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다.
돈 탭스콧은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넷세대의 여덟 가지 기준을 언급했다.
- 넷세대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자유'를 원한다. 여기서 자유는 선택의 자유로부터 표현의 자유까지 다양하다.
- 넷세대는 맞춤화 하고 개인화 하는 것을 사랑한다.
- 넷세대는 새로운 감시자다.
- 넷세대는 무엇을 사고, 어디서 일할지 결정할 때 기업의 성실성과 정직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 넷세대는 일, 교육, 사회생활에서 엔터테인먼트와 놀이를 원한다.
- 넷세대는 협업과 관계를 중시한다.
- 넷세대는 속도를 요구한다.
- 넷세대는 혁신을 주도한다.
이처럼 넷세대는 기존의 세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인다. 보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이며 사회화를 빨리 시작하는 넷세대들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바우어라인 교수는 <가장 멍청한 세대>에서 "30세 미만은 아무도 믿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하지만 넷세대를 둘러싼 비판은 기원전 2000년도 수메르인의 성형문자 판으로부터 내려온 차세대를 비판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를 닮아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넷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간극은 과거 어떤 세대의 간극보다 기술적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100명 이상과 소통할 수 있고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수 십분내에 1000명 이상의 사람을 집단화하거나 필요한 정보는 언제 어디서든지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넷세대는 과거의 어떤 세대도 성장기에 갖지 못했던 강한 도구 '정보 기술'을 신체의 일부분처럼 사용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에서는 넷세대의 일상과 뇌구조로부터 발견한 이들의 특징들을 교육, 기업, 소비, 가족, 민주주의에 적용하면서 각 분야의 기성 전문가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넷세대들에게도 무분별한 사생활 공개 등의 악영향에 대해 충고한다. 돈 탭스콧이 말하는 넷세대를 위한 7가지 지침 중 몇가지를 이곳에 옮긴다.
- 직장에서 인내심을 가져라
-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같이 하라
- 경험을 무시하지 말라
- '원칙이 있는 중요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
- 포기하지 말라
<디지털 네이티브>에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넷세대를 연구했지만 많은 사례가 캐나다와 미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반면 약 6년전에 이미 싸이월드 일촌 파도타기, 다음 까페, 네이버 지식인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디지털화를 시작한 대한민국에 대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서는 인구통계학에 기반해서 베이비붐 세대와 넷세대를 구별했지만 이는 대한민국에는 잘 맞지 않는것 같다.
단기간에 민주화와 자유주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초고속 국가 성장 모델 속에서 성장한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의 경우 정보 기술 습득 및 활용의 속도가 다른 나라의 기성세대보다 훨씬 빠르다.
한 예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연동해서 온라인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한 송양주씨(@songyangju), 은퇴 후 귀농해서 포도와 복숭아 등 과수원 재배를 하면서 트위터로 온라인 판매 하시는 석종기씨(@mountpeach), 그리고 과거 대한민국 벤처 1세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온라인을 통해 기업호민관 활동을 하는 이민화교수(@minhwalee) 등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소셜 네트워킹에 접목하여 대한민국 넷세대를 위해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주는 기성세대들이 많이 존재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복잡계에서는 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시스템의 성장가능성 및 안정성이 커진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한 국가에 전혀 다른 사회문화 아래에서 성장한 여러 세대가 존재한다. 이들의 다양성이 협업과 공유의 가치를 통해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대간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선행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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