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와의 첫 인연은 순전히 우연과 무모함이었다. 2006년도에 베를린공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겨울학기를 이수하기위해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 근처에 살고 있었다. 10월 중순부터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한 달 먼저 도착해서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주변 구경으로 시간을 보냈다.
평소처럼 주말 아침에 조깅을 하러 집 근처 공원에 왔다. 높이 떠있는 색색의 풍선들과 거리의 나무 마다 걸여있는 대형 현수막들이 큰 축제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주변을 구경하던 사이 어느새인가 큰 무리의 인파에 섞여 달리고 있었다.
거리마다 집 밖에서 박수를 치며 물을 건네는 주민들과 밴드 공연을 구경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계속 뛰었다. 아침식사 전에 잠깐 조깅하러 나온 차림으로 한 20 km 정도를 달렸을까, 이제는 배도 고프고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 와본 동네고 뒤쳐진 몇몇 사람들 뿐이었다. 주머니에 돈 한푼 들어있지 않았다. 거기다 공식적으로 마라톤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쳐진 사람들을 태워주는 차에 탈 수도 없었고, 짧은 독일어로 자초지정을 설명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결승지점이 브란덴부르크 문이었기 때문에 코스를 따라 계속 달리다보면 집 근처로 가는 방향이었다. 한참을 달렸을까 어느덧 눈에 익숙한 건물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완주 메달을 목에건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6시 30분이라는 비공식 기록으로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으며 얘기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돈 없고 길 모르고 말 안 통하고 힘도 빠진 상태에서 절망감에 앞만 보면서 뛰었다.
그 로 계단을 오를때마다 고생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독일어 어학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베를린마라톤이 세계 4대 마라톤(뉴욕, 런던, 보스턴 암스테르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인 마라톤 대회라는 사실을 알고 괜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때 이후로 언젠가는 반드시 공식적인 풀 마라톤 완주 기록을 남겨보겠다는 꿈을 키웠고, 그래서 올해 4월 18일에 제 8회 경기마라톤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수원으로 이사한지 올해로 4년째가 되지만 아직도 수원 지리를 잘 몰랐는데, 이번 마라톤을 기회로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수원시내를 구경할 계획이다. 뛰는 중간 중간에 실시간으로 사진과 함께 트윗(@JihoonRoh)을 할 예정이다.
FYI
42.195의 유례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사뭇다르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당시 영국 왕실은 마라톤의 출발과 결승 광경을 편안히 볼 수 있도록 코스를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종래의 마라톤 거리 40.235km 보다 약 2km가 긴 마로톤 코스가 정해졌으며, 이 새로운 거리는 런던 올림픽 이래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의 마라톤 전쟁에서 유래한 이 경기에 얽힌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한 전 세계적인 마라톤 경기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에서는 금기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이란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다.(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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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4:37.07의 기록으로 완주했습니다. ^^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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